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나마 침공 (문단 편집) == 경과 == 현지 시각 12월 20일 0시 46분 미국은 전격적으로 [[파나마]]를 침공하였다. 이때 파나마에서 미군 장교가 살해된것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컸으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초당적으로 전쟁을 결정한 데다 전쟁에 대한 지지 여론이 무려 80%에 달하였다. 미국에서는 파나마 주둔 미군에 더하여 미국 본토에서 9500명의 해병대, 육해군을 추가 동원하였다. 침공에 동원된 미군은 2만 7,684명, 비행기는 300기에 달했다. 이때 미국은 파나마가 작은 나라라고 얕보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했고, [[F-117|F-117 스텔스 공격기]], [[AH-64|AH-64 아파치 공격헬기]] 등 당대 최신 장비까지 동원하였다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122500329205006&editNo=3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12-25&officeId=00032&pageNo=5&printNo=13615&publishType=00020|#]] 반면 당시 파나마군은 1만 6,300명이었고 장비도 미군에 미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 병력도 3,000명만 군사훈련이 완료된 상태였다. 그러다보니 파나마군은 미군에게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했고 [[파나마]]의 수도 [[파나마 시티]]는 순식간에 함락되었다. 파나마의 레이더망도 [[F-111|EF-111 레이븐]]에 재밍되어 무력화 되었다. 미국은 이전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해졌으나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여 집권 기회를 놓쳤던 기예르모 엔다라를 수반으로 하는 [[친미]] 정권을 승인하고 기존에 발효했던 대 파나마 경제제제를 모두 해제하였다. [[마누엘 노리에가]]는 국영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"우리는 지금 [[참호전]]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."라고 발언하는 등 독전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. 3일간 파나마 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노리에가가 [[바티칸]] [[대사관]]으로 도피하면서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. 24일 오전, [[마누엘 노리에가]]는 [[파나마]] 시내의 [[바티칸]] [[대사관]]에 나타나 [[바티칸]]으로의 [[망명]]을 요청하였다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122500099205003&editNo=1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12-25&officeId=00009&pageNo=5&printNo=7328&publishType=00020|#]] 기예르모 엔다라 파나마 대통령은 [[요한 바오로 2세]]앞으로 서한을 보내서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를 내놓는 것이 파나마인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며, 그와 추종자들이 저항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. 한편으로는 호세 세바스찬 라보아 대사는 교황청 대사관 직원들이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와 그 일당에게 인질로 붙잡힌다면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권한을 미군에게 부여하였다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9122900289104001&editNo=4&printCount=1&publishDate=1989-12-29&officeId=00028&pageNo=4&printNo=503&publishType=00010|#]] 미국은 외교적으로 교황청에 강력한 압력을 넣는 한편 미군은 교황청 대사관을 [[전차]]와 [[철조망]]으로 포위하고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여 [[록 음악|록]]을 시끄럽게 틀어서 대사관에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0010500289104012&editNo=4&printCount=1&publishDate=1990-01-05&officeId=00028&pageNo=4&printNo=508&publishType=00010|#]] 해가 바뀌어 1월 3일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는 밤 8시 50분에 교황청 대사관에서 걸어나왔다. 당시 목격자들은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가 하얀 장군복 차림에 수척한 모습으로 대사관에서 걸어나와 [[미국 마약단속국|미 마약 단속국]](DEA)요원들에게 체포되었다. 그리고 헬리콥터를 타고 미군 기지로 호송되었다. [[조지 H. W. 부시]] 미국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가 자발적으로 미국에 투항하였다고 밝혔으며 [[C-130]] 수송기로 플로리다로 이송되어 마이애미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밝혔다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0010400209201006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90-01-04&officeId=00020&pageNo=1&printNo=21003&publishType=00020|#]] 미군에 연행된 [[마누엘 노리에가|노리에가]]는 미국 [[마이애미]]에서 재판을 받고 마약 거래, 마약 조직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[[징역]] 40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미국의 [[교도소]]에서 복역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